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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인간극장

철없는 디자인 전공생의 중소기업 입사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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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설 주의* 

*약 4-5월까지 쓰일 이야기임. 현재 진행형... 
*이 시리즈는 그냥 일기에 가깝지, 도움되는 얘기 없음
*광고 때문에 레이아웃이 상상 이상으로 너무 지저분할 수 있음

사람은 참 좋은 회사인데, 대표님이 무서웠다.

 

우리나라 사회는 보수적인 사람에게는 참 잘 맞는 시스템이다.

1년의 차이만으로도 사람은 높고 낮음과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데에 예민하고,

그러는 쪽이 좀 더 서열을 정하고 그룹을 묶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재수를 했다, 군대를 1년 늦게 갔다, 군대를 뭐 이리 늦게 가니, 아니 삼수를 했다고? 세상에, 야, 서른 전에는 그래도 번듯한 회사는 좀 가야지, 결혼은 언제 하니, 마흔 전에는 결혼 좀 해라, 언제까지 총각으로 살 테냐, 애미 손주 좀 보게 해 줘야지, 집은 얼마 이상을 사야 된다, 집값 얼마 이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연봉이 얼마 이상인 사람과 만날 테다 등등... 

어쨌든 같은 나이라 하더라도 '빠른년생'이라는 개념까지 기필코 도입해서 편을 가르지 않는가. 

 

^^;;


나는 그런 쪽에서는 조금, 아니 많이 아웃사이더에 속한다.

굳이 1년의 차이가 중요한가, 조금은 늦는 사람도 있고, 많이 아픈 사람도 있고, 넘어지는 사람도 있을 텐데... 조금은 태평하게 모두가 살면 덜 피곤할 텐데,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피곤함의 물결에 몸을 싣고 조금이라도 함께 해야만 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니까. 현실 상황에 대해 약삭빠른 성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은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아니더라도 이무기는 되어 보자고, 다만 그 속도에 맞춰서 표준에 맞는 사람으로서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규분포표에서 저기, 중앙에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변방에 있는 것에 만족하는 그런 사람.

적어도 대한민국이 조금 어설프다고 굶어 죽는 사회는 아니니까...



아, 퇴사하고 싶다.

내 월급은 왜 이리 적은가,

다음 달엔 기필코 퇴사를 하고 말테다 ... . 

 

아마 대다수의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 마음 속에 품고 가는 말들, 경력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가슴 속엔 비수 대신 사직서라는 봉투를 넣고 다닌다는 말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갓 학생 티를 벗어났을 뿐 세상 물정 잘 모르고 철없는 한 사람에게는 그런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지금은 잘 알 것 같다. 계좌에 찍히는 0의 자릿수도 중요하고, 하는 일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고... 

 

고3 때였나. 

 

장그래가 바둑을 관뒀듯 나도 디자인을 관둘 수도 있다.


한창 수능특강, 인터넷수능 ... 을 넘어 수능완성, 그 외의 잡다한 개념서까지 다회독을 마친 그 무렵,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눈물과 분투를 그린 드라마는 많이 있었을 테지만, 비록 픽션이라 하더라도 월급쟁이라는 그림자를 등에 짊어진 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맥주보다는 소주가 좀 더 잘 어울리는 그런 드라마로 다가왔던 기억이 났다. 수능을 한 달 앞둔 무렵에도 재밌게 봤었으니까. 

다만 그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내가 원하는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전공을 하게 되더라도,

 

일이 잘 안풀리면 어떡하지?

계약직을 전전할 수도 있겠지?

학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성적도 꾸준히 잘 받아왔고, 입시 역시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내가 꿈꿔왔던 이상에는 한 발짝 가까워졌던 것 같았다. 그냥 순진하게, 순수하게, 그런 이상 속에 빠져 살면 잠깐의 앞을 보는 것은 퍽 행복한 일이다. 다른 걱정이 생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입시를 마친 뒤의 보상 심리도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여기에 굳이 자세하게 풀어쓸 내용은 아니기에 내 학창 시절이 어떠했고, 대학생활이 어떠했고를 말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이 지니는 후광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조금은 아스라 져가고, 빛이 바래져 가는 면도 있지만 말이다.

잠깐은 의기양양함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성취감에 젖어있을 1학년,

서서히 전공에 대해 현실을 깨달아가는 2학년,

내 앞날을 걱정하게 될 3학년,

그리고 종지부를 찍는 4학년, 슬슬이 아니라 정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정해야 하는 그 무렵이란 쏜살같이 다가왔다.


나의 경우에는 디자인, 그러니까 그 중에서도 시각디자인을 전공으로 삼았다. 1학년과 2학년은 잠시 어리다는 핑계로 '좀 못해도 괜찮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살았다면, 3학년부터는 잠시 겁이 나는 것이었다. <미생>을 볼 때의 그 생각과 같았다. 나는 대체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된단 말인가. 영상을 재밌게 느끼기는 했지만 과연 끊임없는 창작에 몰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고, 현실과 타협하는 쪽이 조금 더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 관해서는 많은 기억이 있지만, 가장 강렬한 기억이자 결국은 이루지 못한 아버지와의 약속이 있다. 

 

 

아빠, 제가 하려는 미술은 순수한 미술이 아니라, 돈을 버는 미술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철이 없는 말, 나는 아까도 이상에 젖어살았다고 했지만 고등학생이니까, 그냥 친구와 함께 하던 동아리 활동이 재밌었고, 분명히 흥미가 있었으니까 저런 말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실력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밟아 나가는 코스에 있어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신, 창작이 아니라 기업에 봉사하는 디자인을 하자고.

나는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지닌 게 맞다. 엄연히 'Bachelor of fine arts'라는 학사학위를 지닌 것도 맞고, 졸업전시 역시 교수님의 칭찬을 들으며 진행을 했으니 자신감에 차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남들 다 한다는 인턴 생활도 못하고, 그럴싸한 대외활동도 없었지만 어쨌든 포트폴리오가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3학년때의 미천한 실력을 반성하고 열심히 갈고 닦았다. 수능특강을 풀던 그 열정과도 같이 하루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끄적이고, 만들고, 가끔은 풀리지 않는 일정에 조금은 속상해 하기도 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게 2020년 무렵.

 

학점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학점도 잘 받았다!

 

만들어진 포트폴리오는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 사이트의 메인에도 걸렸으니 말이다. 

 

비록 Behance는 아니지만, 그래도 국내 디자이너 커뮤니티에 이렇게 버젓이 박제된 것이 엄청 뿌듯했다.

괜히 더 자신감에 차올랐다. 지금보면 어이없는 구성인 것도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철없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이상에 젖어있는 건 여전했다. 김기림 시인의 시였나, 나비도 나오고 바다도 나오는 그 시, 거기에 보면 딱 그런 표현이 나온다.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고, 괜히 가까이 갔다가 여린 날갯결만 서슬퍼렇게 젖어서 돌아온다는. 내가 나비처럼 아름답다는 건 아니지만, 딱 그랬다. 

 

포트폴리오를 본격적으로 첨부하고, 자기소개소설인지 자기소개서인지 뭐시기를 쓰고... 보통은 조금이라도 거짓을 꾸며 쓸 법도 한데, 나는 또 무슨 자존심이 있다고 솔직한 이야기도 했다. 나를 탓할 수 밖에 없나, 아니면 이게 이상한 건가, 하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신입을 채용한다면서 사실상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면접에 가서도 실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이 있냐고 한다. 있었으면 경력직으로 지원을 했겠죠...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 '경력기술'에 대해 강조하는 파트가 많이 보인다. 신입인데 무얼 한게 있어야지...인턴도 경력이라 해도 되나, 아니 그렇게 말하기엔 난 인턴 경력도 없는데... 결국은 내세울 게 없으니 판에 박은 이야기보다는 진솔한 이야기를 쓰고 '나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어딘가의 인재상에는 맞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히피마냥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 게 아니라, '내 성격은 비록 이렇지만, 이런 면에서 강하다'는 이야기가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썼다.

세상살이에는 요령 피우는 것이 적당히 중요한데 난 순진하게 그런 요령도 잘 피울 줄 몰랐다. 영악할 것도 없고...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실패를 겪는 사람이고 잘 풀리지 않는 면도 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품을 벗어나 하나하나 '탈락' 통보를 보았을 때에는 참 씁쓸함이 많이도 앞섰다. 왠지 엄마와도, 아빠와도 한 약속을 지키지는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내가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고, 경험도 없고, 면접에서의 어수룩함도 분명 있을테니... 그러는 대신, 나는 꼭 흔히 말하는 '대기업'이 아니라 작은 회사부터 시작하는 쪽도 나쁘진 않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세상에는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나는 그 바운더리에서는 많이 벗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냥 흔히 말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셈. 그러니까 준비는 되어있어도 '표준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뒤떨어지는 면도 많았던 것이다. 일단 솔직해지자, 나는 경험도 부족했고, 타인과 소통을 활발하게 하기에는 발음도 어눌하고, 의사전달도 그렇게 또렷하진 않으니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임을 넘어서 저 사람이 더 다홍치마에 부합하고, 나는 괜한 '쫀심'만 부리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잠깐 물류센터에라도 들어갈까? 어느 정도 통장에 자본이라도 쌓이면 취업 준비를 하는 데에도 마음 가짐이 조금 달라질테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여기보다 최악은 없으리라' 라는 생각도 들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물류센터 이야기가 나오는건 괜히 하는게 아니라, 지금 입사를 하고 곧 탈주를 앞둔 이 곳에서의 여정이 물류센터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다.

어도 물류센터는 확실한 봉급과, 추가수당이 주어지고, 주어진 일에 최선만 다하면 된다. (당연히 여기 수당이 더 높다.)

물론 ㅈ같이 힘든건 맞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약간의 실수가 있더라도 용인이 되고,

단순작업이더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4달 정도에 불과했고, 힘든 일이었지만 노동의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이 물류센터에서는 아름다운 이별을 했었다. 조금은 까칠하시지만 딱 '츤데레'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주임님, 과장님, 그리고 일은 고되더라도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인사를 마친 뒤 물류센터를 마지막으로 나오는 날에는 눈시울이 많이 아팠다. 잠깐임에도 불구하고 후련함과 함께 정이 들어서 그런지... 그래도 다시는 저 곳에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마음과 함께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나는 그래도 부족한게 많았나보다. 

 

신입을 뽑겠다고 해서 왕복 여섯시간을 오고가니, 포폴도 괜찮고 성격도 괜찮아 보이시네요, 긍정적으로 보겠습니다. 를 끝으로는 정작 경력만 뽑겠다며 퇴짜를 놓은 스튜디오, 자체 사업으로 전개하는 음식점에서 면접을 본 회사, 취조실에 불려나간 것마냥 가족 관계까지 사사건건 캐묻고 무례한 질문만 하던 개발회사 등등, 풍문으로만 듣고 썰로만 듣던 곳을 경험하다보니 조금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곳이라도 닥치는 대로 넣기보다는 그래도 전공에 맞추되 작은 곳부터 한차례 한차례 밟아나가는 게 사회의 순리겠거니 하면서, 드디어 대망의 한 회사에 입사지원을 넣었다. 

 

오! 평점도 괜찮은데?

공고를 보다보면 조금은 눈이 길러져야 했을 텐데, 사람인의 기본 템플릿만 활용한 공고이다. 이런 곳은 조금 쎄하다... 싶으면서도 혹시나 해서 나는 그때 잠깐의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지원을 했다. 이상하리만치 입사 지원자가 적은 데도, 적어도 담당 업무에 관해 저렇게 설명하고 있다면 어설픈 업무는 절대 아닐 테고, 회사 홈페이지가 다소 조악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해온 사업 내역을 보면 상당히 비전이 있어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부분으로 디자인을 특화시켜 진행하는 회사는 몇 없는 걸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몇 없긴 했었다.) 일단은 말이다. 일단은! 
자세히 쓰면 회사 특정이 가능하니 ... 조심하는 게 맞겠지? 

 

나는 그때는 몰랐다. '고도화'라는 말이 정말 전문적인 표현이 아니라 단순히 숫자만 바꾸고,

외주를 받아 간단한 이름(Label)만 수정하고... 그런 일일 줄은 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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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를 하고, 전문적인 컨설팅을 수행할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스파이마냥 침입해 게시글을 올리고,

공사판 현장마냥 무언가를 조립하고, 자연의 한계를 넘어 무언가를 설치해야되는 현장인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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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플래닛 리뷰 역시 몰랐다. 좋아보이고,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말이 조용히 돌이켜보니 대표가 쓴 리뷰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은 1점대, 2점대 리뷰가 있기는 했지만 결코 완벽한 회사는 없으리라는 건 알았고, 3점 중반대면 아주 훌륭한 회사 아닌가! 하면서 ...

 

면접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서도, 면접에 참석하겠다고 했음에도 회사 측에서는 문자가 전해진 줄 몰라서 대표와 실무진이 아닌 '실무진(팀장님)'만 계신 상태에서 면접을 보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먼 거리지만 다시 여기에 와야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군말을 하기 보다는 그냥, 하나하나 감사하게 되면서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재면접을 위해 왕복 5시간의 거리를 또 갈 일은 없었지만...

 

 

그렇게 나는,

작년 가을 경 22년 기준 최저임금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2300만원과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닐 수도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어쩌면 내 가치에 걸맞는 금액일 수 있다. 아직은 생산성이 없으니까...
방세 등을 제한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만 따지자면 오히려 아르바이트를 본가에서 하는 게 더 돈 모으기에는 좋을 수준이다. 다만 당시에는 내가 원해서 지원한 회사에 다니게 된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감사해하고, 고시원이라 하더라도 서울에 둥지를 틀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고맙게 여겼다.

연봉이 적어도 경력만 잘 쌓으면 되는 거고, 내가 용의주도하게 하나하나 역량을 키워나가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이 생각이 당연히 맞다. 엄연히 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니까! 경력을 쌓아나간다면 두려울 게 무엇 있으랴.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뭔가 회의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때가 있다면 어떨까...? 내가 발전이 있는 건지?

드디어 나도 전문적인 디자인을 하며 경력을 펼쳐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애초에 눈을 높일 생각도 없었고.

 

 

경력이라,

좋은 단어이다.

작은 회사라 하더라도 확실하게 프로젝트를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다면 나도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테고,

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곳에서는 많이 회의감이 드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 곳에서 마땅히 포트폴리오라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

너무 심각한 문제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항상 금과옥조처럼 안고 다니는 말이 바로 '포트폴리오'인데도. 

리뷰 중에 그런 게 있었다. 공무원처럼 다니고 싶다면 추천한다고... 하지만 여긴 엄연히 사기업이다. 이 곳에서 40년 묵을 건 아니니... 

 

 

다시 돌이켜보자, 그래도 내가 하자있는 사람은 아닐 테니까. 나는 여전히 우리 엄마의 자부심이다. 

친구는 이 말을 갖고 나를 장난스레 가끔 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소신을 갖고 자주 쓰는 표현이다. 

 

 

-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