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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인간극장

[고시원 살이 일기] 지상으로부터의 수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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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적절히 패러디 해 봤다.

의식주(衣食住),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교과서에서 접할 수 있는 이 단어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세 단어이다.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곳. 중요성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셋 모두 중요한 것들이지만, 남 사는 일에 지독하게 관심이 많고 부동산 문제가 매일 화제가 되는 이 나라에서는 '사는 곳'의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 단순히 주거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한 사람의 경제 계획을 좌우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신 계급제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디에 사느냐'의 문제는 내가 편히 먹고, 쉬고, 자는 공간임을 넘어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영등포 쪽방촌의 모습. 서울에는 아직 이런 곳이 있다...      출처 : 노컷뉴스, 황진환 기자

펜트하우스, 고급 타운 하우스, 브랜드 아파트... 부터 시작해서 가장 아래에는 원룸촌, 고시원, 쪽방촌 등이 있을 테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의 청춘 시절, 구로 공단 근처 가리봉동에 있을 법했던 그 벌집촌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모두 사람이 사는 공간이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자기 앞가림에 안맞게 원룸촌 필로티 구조 밑에 주차되어 있는 외제차라든지, 뭐 그런 풍경. 각자마다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산다냐' 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오지랖이지만, 이는 우리나라만의 유구한 전통(?)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고시원에 세를 들어 살게 된 나는 어쩌다가 이 곳으로 왔을까?

이런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거의 없다. 그래도 저긴 스프링클러라도 있다.

고시원이라 하면 보통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연식이 너무 오래되어 방음이 안되는 벌집같은 쪽칸들, 스프링클러조차 없어 화재 발생 시 참사를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구조,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짐작조차 안되는 이웃방 괴인들... 웹툰이 원작이고,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꽤 이름을 알린 '타인은 지옥이다'와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그게 딱 고시원을 향한 대부분의 인식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일까? 

 

내가 사는 동작구 한 고시원의 건너편 풍경,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지나칠 때마다 기묘한 느낌이다.

도망치듯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면접을 보다가 ... 어쩌다보니 한 회사에 둥지를 틀게 됐다. 아직은 수습 사원이지만, 별다른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사원이 될 것이고, 봉급도 매우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제 어머니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나 혼자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게 제법 위안이 되기 시작했다.

 

배차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편도 3시간에 준한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내 본가인 파주에서 회사까지 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대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과장 좀 보태자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KTX 타고 가는게 차라리 나을 수준이다. 그건 승차감이라도 좋잖아... 환승을 두세번 반복하고, 기약 없는 배차, 도보, 궂은 날씨까지 겹친다면 정말 여가따윈 없는 최악의 삶의 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서울을 자리잡아야만 했다. 다만 원룸을 알아보기에는 보통 단기임대가 아니라 1년 단위의 계약을 요구하는 편이고, 또한 아직은 수습이기에 3개월동안만큼은 임시로 지낼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답은 고시원뿐이었다. 내가 여기에 다 오게 되는구나. 

 

고시원을 알아볼 때 제일 많이 보게 될 화면. 일일이 문의를 남겨야 하는 불편함이 크다.

 

고시원계의 직방

고시원의 경우 마치 헬스장과도 같이 정보가 좀 불투명한 측면이 있다. 직방과 같은 플랫폼이 그러하듯이 사진에 과한 보정을 입혀놓아 기껏 발품을 팔았더니 실망을 하게 되는 순간도 있고, 가장 어려운 점은 가격에 대해 바로 문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뭐 까짓꺼 홈페이지에 QnA 남기거나, 전화로 직접 여쭤보면 되지만 하나하나 가격을 신속하게 비교하기엔는 굉장히 불편하다. 이만한 블로그에 당연히 광고는 아니고, 정말 내가 써보고 도움을 많이 받은 어플이 바로 '고방'. 
'룸앤스페이스'와 같은 어플도 있긴 하지만, '고방'의 경우 운영진이 직접 해당 고시원에 방문을 하고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좀 더 상태를 확인하기 좋다. 가장 좋은 점은 리뷰를 남기고, 가격 정보 공유가 잘 된다는 점... 이 어플을 이용한다면 당연히 원룸에 비하자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으로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은 어떻게든 찾을 수 있기는 하다. 나도 이 어플을 통해 방을 찾게 되었다.

 

리모델링을 해서 제법 깔끔한 복도

이 곳은 동작구의 노들 부근. '창문이 없는 방', 즉 복도로 창이 있는 '내창' 방이 30만원, '외창'이 있는 경우 즉 환기가 되는 방은 33만원이었다. 내부에 화장실이 있어 샤워까지 할 수 있는 경우는 가격이 40만원에 준한다. 월세에 비해 그닥 차이가 안나는 것 같지만, 관리비가 절대로 생길 일이 없으며... 혹시 라면과 같은 부식을 좋아한다면 이런 것도 무제한 제공이 되니 어떤 사람에게는 좀 절약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 관리비를 아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가뜩이나 좁아 터진 방 내부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에는 청소의 불편함, 공간 활용의 어려움이 예상되어 외창 방으로 고르게 되었다. 근데 문제가 있다면... 창문이 정말 작다. 방 내부, 그리고 실내 환경에 대해서는 2편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이만한 창문으로 무얼 하나!

외창 방임에도 불구하고 창문의 크기는 겨우 이 정도이다. 보통 집을 구할 때에는 채광을 정말 중시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선 햇빛이 드는 것만으로도 우중충한 방의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으며, 인공광으로는 절대 흉내내지 못하는 풍부한 자연광은 사람의 심리 상태부터 바꿔준다. 낮에 따스하게 드는 햇빛은 빨래를 말릴 때에도 좋지만, 생리적으로도 비타민D 합성에 도움이 되는 등 있으면 좋지 없어서는 안될 요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은, 사장님 말씀으로는 신축이라고는 하셨지만, 리모델링을 했다는 점에서 신축이라 하셨던 것 같다. 창문의 크기가 굉장히 아쉬웠지만, 당장 급한 것이 방을 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고시원을 알아본 결과 지나치게 산 위에 있다든지, 정말 닭장같은 느낌이 들어 결국 이 곳으로 골랐다.

 

무엇보다 사장님이 정말 중요한데... 한 고시원의 경우 총무가 거의 모든 일을 담당했다. 아무래도 동네가 동네다보니 시험을 준비하는 분처럼 보였는데, 정작 집중해야 할 공부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고시원의 잡무,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만 매달리다보니 수면 시간도 매우 부족해보였고, 괜히 방을 보는게 죄송해질 정도였다. 사장님이 아니라 총무, 즉 자신이 고용한 사람에게 모든걸 맡기는 곳은 고시원 뿐만 아니라 업종을 불문하고 조심해야 된다. (음식점에 절대 얼굴을 내비추지 않는 사장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 사장님이 항상 계시는가?
  • 총무를 부려먹고 사장님은 부재중인 경우는 없는가? < 정말 중요하다.
  • 사장님과 직접 꼭 이야기를 나눠보고, 첫인상을 파악하자.
  • 대화해보면 이 곳이 '타인은 지옥이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

방의 분위기, 그리고 실제 현장 사진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하는 사진은 상당히 다르다. 실제로 가보면 뽀샤시한 분위기보다는 음... 사람 냄새가 난다고 에둘러 표현해야되겠다. 

 

그래서, 다음 편에는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생활상은 어떠한지, 실제 환경은 어떠한지, 이 곳에서 지낼때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는지... 등에 관해서 써보고자 한다. 발 붙일 곳이 별로 없는 서울인지라, 이만한 공간도 감지덕지하며 살아야 된다는게 약간은 씁쓸하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곳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생각보다 환경 적응에 굉장히 능하니까.

 

공원에서 뛰논 뒤 그나마 달려있는 거울을 통해 찰칵...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