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유퀴즈, 주연 없는 주연극처럼 되어 버리다.
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 한 방울, 정도와 함께 그냥 사변이다.
다만 티비 채널을 돌릴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프로그램인만큼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써 보게 되었다.
일단 자가격리 중이니 집에만 있기에 적적하다 !
큰 자기 X 아기자기
자기들 마음대로 떠나는 사람 여행!
자기님의,
자기님에 의한,
자기님을 위한
[유퀴즈 온 더 블럭]
길 위에서 만나는 우리네 이웃의 삶,
저마다 써 내려간
인생 드라마의 주연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일상 속 선물 같은 순간,
“You Quiz?”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공식 홈페이지 內 프로그램 소개 중
자가격리 와중에 유튜브에 요즘, 알고리즘의 가호를 받아 유퀴즈가 부쩍 많이 추천되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창을 닫게 됐다. 잘 만든 프로그램이고, 인기도 많은 프로그램이고 화제도도 높지만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 방송부터 쭉, 정말 매주 그 프로그램만 기다려왔을 정도로 챙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여기서는 큰 자기와 아기자기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일종의 토크쇼로, 유재석은 물론 조세호의 재치있는 입담이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다. 또한 여기에 출연하게 되는 인터뷰 대상자의 경우 '자기님'이라는 호칭으로 존중받는다. 초기에는 지금의 방향과는 다르게 길거리를 다니며 마주하는 불특정의 인물과 마주하며, 그 과정에서 정말 ‘우리네’라고 할 수 있는 소박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으며 재치있는 입담에 이끌렸던 걸로 기억한다. 우선 '우리네'라는 단어는 보통 말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서민적인 정서, 혹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것들에 대해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우리 인생'이라고 말하는 경우보다는 '우리네 인생'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좀 더 소속감, 정체성 그 비슷한 감정을 안고 가는 듯한 인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우연히 마주하는 사람이 비범한 사람인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모두가 비범하다. 왜냐하면 저마다 특별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특별한 사람이니까. 상기한 글은 지금 이 시점에도 게시되어 있는 유퀴즈의 기획 의도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우리네 이웃의 삶이 곧 인생의 주연이다’라는 말로 정리되는데, 그런 바가 충실히 잘 드러나는 것 같은 부분이 이전의 유퀴즈였다. 생명이 싹트는 봄, 무더위에 지쳤지만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 풍요와 저묾을 함께 보여주는 가을, 모든 것의 안식을 보여주는 겨울 모두를 아울러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참 포근하게 보여줬던 것 같다.
짤로도 가끔 회자되는 ‘샤넬 미용실’부터 시작해서, 제일 인상깊은 에피소드였던 ‘문방구 노부부’ 이야기, 가끔은 꼭 우리 어른들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순수함과 현명함에 대해 감탄하기도 하고… 그런 매력이 시즌1과 시즌2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면 시즌3 이후로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길거리 무작위 캐스팅이 불가능하다보니, 기획에 맞추어 특정 주제에 따라 다양한 사람을 초빙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힘든 시기를 겪고 대입에 성공한 수험생들의 노력을 되돌아보는 특집도 있었고, 시즌 1과 2의 연장선을 그대로 이어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어느새 낯섦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막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듯이 이제 유퀴즈는 ‘우리네 인생’이 아니라 ‘당신의 업적’에 대해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실패를 겪든, 성공을 겪든,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초라해보이는 이야기처럼 보여도 그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존중해준 방향성과는 다르게 이제는 ‘성공’에 대해서 말하기만 시작했다. 궁상맞아 보이더라도, 혹은 나와는 다르게 후줄근해 보일 수는 있어도 동네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을 품어준 따뜻한 이야기보다는 사회의 경쟁 논리만 담아내는 피곤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 것 같다. 자막으로도 노골적으로 ‘복지가 어떻다’ ‘연봉이 어떻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인간미가 있는 이야기처럼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 그러다보니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보다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인물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동차 사기꾼, 재정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발판으로 삼아 입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사람, 모 기업의 임원 등… 차마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논란의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했고,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성공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뒤에는 다른 사람의 피눈물도 있었을 텐데. 성공을 알리고 그 노력에 대해 존중하는 바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유퀴즈가 초창기에 말하던 ‘모두의 이야기’보다는 ‘그 사람만이 지닌 신화’를 더욱 우상화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나날이 갈 수록 그 사람만이 지닌 무형의 가치보다는 ‘돈’에 대해서 말하는 것만 비쳐졌을 때는 프로그램이 지닌 따뜻함이 더 이상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연봉은 얼마인가’ 외치는 진행자의 질문도, 특히 최근 특집으로 다뤘던 ‘베네핏’에 대해서 과하게 찬미하는 방향도 역시 ‘공감’을 모토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비교’를 우선시하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방향이 시청률이 훨씬 더 우수하게 나오고, 방송사는 영리를 추구해야 하므로 현 포맷을 바꿀 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예능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예능은 한 번 성공 공식이 정해지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양 프로그램도, 드라마도 아닌 이상 예능만큼 모험을 요구하는 동네는 없을 것이다. PD 딴에서는 우수한 기획이었을 것이 시청자에게서는 비판 세례를 받는 경우도 숱하게 있다. 다만 지금도 버젓이 기획 의도로 걸려있는 만큼, 물신주의에 젖어들기 시작하는 지금과 다르게 ‘저 사람과 달리 나는 왜 이렇지’하는 비교를 불러일으키는 섭외 방향이 아니라, 초심을 한번이라도 되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프로그램이 항상 한결같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글도 결국 일개 한때의 시청자의 의견일 뿐이지만… 출연자에게 쥐어지는 ‘자기님’이라는 목걸이는, 소박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이야기를 존중해준다는 증표가 아니라 이제는 ‘성공 클럽’에 들어가게 된 명예의 증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나는 그렇게 비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티비를 보다가도, SNS를 보다가도, 혹은 그 외에서도 무의식 중에 ‘나의 형편’과 ‘다른 사람의 형편’, 혹은 저마다의 배경 차이와는 다르게 ‘성공’만을 부르짖는 방향에 대해서는 의식적인 회피를 하게된다. 그냥 그게 너무 피곤해서그런 것 같다. 굳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티비에서까지 지리멸렬한 평범한 이야기를 봐야되겠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놓는 관찰 예능, 하하호호 즐기는 이야기들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고, 지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공이나 명예 등에 집착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발짝 그런 곳에서 벗어나면 조금은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도 있다. 성공을 이룬 모습을 부러워 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지?’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피로감을 주기가 정말 쉬워진 시대이다. 별로 집착하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해야합니다, 이런 곳에 들어와야 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해야합니다’를 종용하는 그 느낌이 영 좋지는 않다. 많이 무던해진 것일까, 그래서 내 유튜브에는 자신을 뽐내는 것보다는 <인간극장>, <다큐3일> 등의 프로그램이 더 많이 추천되고 있다. 굳이 매체에서까지 평범한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그냥 이런 평범한 모습을 보면서도 작지만, 다양한 것들을 존중하는, 혹은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게 내 꿈이다.
그래서 유퀴즈가 이전과는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 매너리즘에서 좀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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