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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쓸데없이 길기만 한 리뷰

[장미의 이름] 지난 날의 장미들이 남긴 저마다의 기억과 향기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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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학 재학 시절 작성한, <장미의 이름>의 원작인 소설과 각색된 영화를 비교 서술하는 내용입니다.
1편에서는 우선 <장미의 이름>을 읽고 생각한 점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2편은 영화와 비교하는 내용입니다. 

컴퓨터에 묵혀두기에는 혹시 과제를 위해 방황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약소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싶어 올립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 힙함은 따라하고 싶어도 못 하겠다.

 

 

장 자크 아노 감독, &amp;lt;장미의 이름&amp;gt;. 1989.

 

앞서 1편에서 소개한 소설, <장미의 이름>을 각색한 영화이다. 장 자크 아노의 대표작이기도 하면서, 007 시리즈의 주인공인, 영원한 우리의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의 중후한 노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중세를 배경으로 삼았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구체적인 모습이 머리 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통해서 충분히 중세의 시대상, 그리고 다양한 양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고유성에 주목하여 어려운 내용의 소설을 충실히 살리고자 노력한 몇 안되는 작품이다. 고전 영화이기에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중세의 매력을 한번 곱씹으며 감상해보도록 하자.

1대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의 젊은 시절.&amp;amp;amp;amp;nbsp;

한편,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이라면 이를 '각색했다'라고 표현한다. 각색도 각색 나름, 각색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종류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 뒤 이 영화의 각색 유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각색은 '충실한 각색', '다원적 각색', '변형적 각색'으로 나뉜다. 이 분류를 알고 난 뒤에는 어떤 작품을 접하더라도 그럴싸하게 아는 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충실한 각색

    쉽게 말하자면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 최대한의 원작 존중이라 볼 수 있겠다. 원작의 서사, 즉 내러티브(Narrative)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 주제 의식, 줄거리 등을 원작에 가깝게 살린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원작의 분량이나 세계관이 방대할 경우에는 충실한 각색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점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 다원적 각색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각색이 이에 해당한다. 원작의 분위기, 원작의 주제 의식 등을 존중하되, 영화 등으로 각색될 경우 영화만의 개성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즉 원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지만, 원작에 없는 요소가 첨가되거나, 특정 사건의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 인물의 캐릭터성이 어느 정도 변형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제작되고 있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 줄거리는 원작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매체에 맞게끔 다양한 변형을 시도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실패한 사례도 매우 많다. 

  • 변형적 각색 

    대표적인 사례.

    원작이 분명 존재하기는 한데, 사실상 이름만 같다고 보는 수준이라고 봐도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 동화 <장화홍련전>과 영화 <장화, 홍련>. 캐릭터의 이름은 같지만, 그 내용은 원작과 같은 요소가 없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소재에 관해서 참고를 했을 뿐, 나머지는 제작자의 역량에 따라 자유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많다. 

세 가지 분류에 따르자면 <장미의 이름>은 다원적 각색에 해당된다. 원작의 윌리엄 수사, 아드소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며,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건의 전개 역시 동일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감독의 의도에 따라 캐릭터를 좀 더 부각시키거나,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감정선을 미묘하게 뒤틀어 표현하는 등 고유의 개성이 부여되어있는데, 이런 부분이 바로 다원적 각색에 해당된다. 



지난 날의 장미들이 남긴 저마다의 기억과 향기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1, 장 자크 아노의 영화 <장미의 이름>2 비교를 중심으로

 

I. 서론

"지난 날의 장미는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3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중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추리 소설의 형태를 갖춘 이 작품의 말미에 나오는 한 문장은 노년의 수도사가 지나간 삶들에 대한 깊은 회한을 품고 있는 듯한 반추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아닌,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야 약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대한 서사의 모든 것을 함축한 이 문장 속의 상징 '장미', 정작 소설 내부에서는 이 장미가 구체적인 소재로서도 장치로서도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제목과 이 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주목할 만하다. 

    동명의 영화 <장미의 이름> 역시 '장미' 그 자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작 에코의 소설과는 다르게 주인공 '아드소'가 유년 시절에 경험한 속세의 사랑, 그리고 신을 향한 사랑을 장미로서 바라보고,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도자로서의 고뇌에 초점을 두었다. 4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아드소의 고뇌보다는 중세 수도원 내부의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들과 사상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 내용 역시 다 른 방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세 수도원 속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살인 사건이라는 공통의 내러티브 (Narrative, 서사와 동일) 분모를 갖고 있는 작품들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어떤 방향으로 변용이 되는지, 그리고 그 마무리의 의도는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어본다.


II. 본론


    두 작품, 특히 문학 작품인 '소설', 그리고 시각 예술로서의 '영화'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 밖에 없는 매체의 차이에 기반하여 도입부에서 드러나는 묘사의 방향의 차이에 대해 분석해보기로 한다.

 

    소설의 첫 출발은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화자가 되어, 수도사 아드소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발레 수도원장의 책을 직접 손에 넣었고, 지적인 흥분감에 휩싸여 이 이야기를 전해야한다는 고백으로 이뤄진다. 5 작가 본인이 직접 등장함으로써 마치 작품 전체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속의 이야기를 재편하여 중세에 관한 생생한 보고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 이후 내러티브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아드소'가 된다.
이와 달리 영화의 경우, 내러티브의 주인공 '아드소'가 화자가 되어 자신이 유년 시절에 겪은 한 이야기를 내레이션(Narration)을 통해 전달한다. 6 이 과정에서 대사는 원작 속의 문장을 변형7하여, 영화 서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방향을 갖게 된다.

윌리엄 수사와 그의 제자 아드소.


    한편, 문학 작품과 영화 모두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만, 문학 작품은 '글'을 통해서 작가가 지닌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영화는 무엇보다 시각적인 부분이 우선으로 보여진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경험하게 되는 갈등의 서사를 보여주어야만 대중의 감정적인 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글이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중세 수도원의 차가운 모습을 영화 속 색 보정을 통해 보여준다면,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없는 당시의 신학적 논쟁이 지닌 사상의 깊이와 중세 교회의 이면은 글을 통해서 자세히 보여줄 수 있다. 매체 자체가 갖고 있는 전달의 도구와 그 특징에 따라서 작가의 의도는 물론 그 전달의 방향 역시 달라짐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도입부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지닌 가장 강한 특징은 영상미에서 드러난다.


    문학 작품과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내러티브의 구심점이 되는 수도사들의 죽음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사뭇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시간 순서에 따라 배열을 하고 있지만, 문학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순서를 재편집하여 영화는 사건의 해결 과정과 함께 아드소가 낯선 소녀를 만나 만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8 평생의 정절과 함께 하늘 아래 있는 미천한 인간으로서 신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는 수도사가 겪는, 어린 시절의 배덕, 그리고 세속에 몸을 담은 죄책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낯선 소녀는 중요한 소재이다.

    소설 속에서의 아드소는 우베르티노와의 대화를 통해 사랑이 지닐 수 있는 신실함과 순수성을 배웠지만, 이후 정욕으로인한 괴로움을 윌리엄에게 고백한다. 9 성장기의 소년이 사랑의 다양한 개념 속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글'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진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해당 작품이 추리의 서사 속에서도 아드소 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원작 텍스트에서는 아드소의 회고 그 자체를 넘어서, '플라톤'을 계승한 전통적인 '교부철학'과 중동에서 건너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사상을 신학 교리와 융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지는 사상의 계보를 문학 작품 속에 변주시켜 담아냈다. 웃음이 진리를 가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시학 - 2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보편 진리에 관한 사변들은, 중세 수도원이 신을 향한 사랑보다는 종단 간의 이념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되어있는 씁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데에 무게를 둔 점이 우세하다.

아드소와 낯선 소녀의 만남&amp;nbsp;


    반면, 영화에서는 윌리엄의 대사 "넌 육욕과 사랑을 혼동하는 것 아니느냐?"10, 그리고 마지막의 아드소의 회고11를 통해, '사랑'이 과연 자신에게 어떤 개념이었는지,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수도사들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각적인 묘사와 더불어 아드소가 스승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성장'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단에 관한 논쟁, 기호의 보편성에 관한 사변, 웃음과 진리의 관계 등 소설 속에서 각주와 함께 서사의 진행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했던 부분들은 과감히 생략되었다.

    서사의 마무리는 두 매체 모두 동일한 서사를 보여주지만, 극적인 호소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영화 매체만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영화에서는 베르나르 기의 이단 심판에서 드러나는 중세 교회의 잔혹성12과 함께 진리를 놓고 벌어진 설욕전이 빚어낸 화재로 인해 수도원이 전소되는 과정까지 보여주고 있는데13, 이 과정에서는 소설 속의 텍스트 그 자체로서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는 장면을 상세히 담아내는게 가능한 영화, 즉 시각예술만의 고유성을 잘 살린 부분으로 볼 수 있다.

III. 결론

    '소설'이라는 매체성을 갖고 있는 원작 텍스트, 그리고 시각예술의 고유성이 담긴 '영화'라는 각색된 텍스트를 비교해보았다. 서론에서 인용한 ‘지난 날의 장미’가 서사 속의 잿더미가 된 수도원처럼 ‘덧없는 이름’으로 남겨지는 아쉬움을 피하기 위해서,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가 지닌 검은 이미지를 타파하고 중세 그 자체로서 그 시대만의 의의를 지니고, 교회 중심적 공동체 속의 입체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아드소는 덧없음을 강조해 수기를 마무리했지만, 이 ‘덧없는 이름’이 될 뻔한 수기를 에코가 다듬은 형식을 취하여 중세의 한 떨기 장미가 계절이 지나도 시들지 않고 우리에게 그 향과 여운을 남기고 있다. 

    더불어 이 원작 텍스트를 존중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는 '다원적 각색'을 통해 영화만의 시각성이 지닌 미학을 살려, '글'만으로 온전히 전달하기에 어려웠던 중세의 풍경을 눈 앞에 펼침으로써 간접 경험의 장을 형성해내었다. 원작과 각색된 작품의 비교를 통해 동일 서사가 매체에 따라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리고 그 공통점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각색의 과정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원작이 각색된 영화는 곧 문학 텍스트가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문학이 지닌 '글'이라는 기호, 그리고 영화가 지닌 '시각성'이라는 기호에 따라 동일한 서사 진행도 다른 구성으로 진행되지만 오히려 배타성을 갖지 않고, 상호 보완성을 지니게 됨을 알 수 있다.


* p. xxx의 경우 원작 <장미의 이름>의 페이지, xx:xx:xx의 경우 영화 <장미의 이름>의 타임라인입니다. 

1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6. 04.
2 1986, 장 자크 아노 감독, 숀 코너리 주연, <Le Nom de la rose>
3 『장미의 이름』, 2006. 04. (p. 911)
4 "...그 소녀의 얼굴이 가장 또렷한게 부끄럽다." (02:07:41), 1986, <Le Nom de la rose>

5 "멜크의 수도사 아드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 『장미의 이름』, 2006. 04. (p.11 - 23)
6 "부디 이 손끝이 침착하게 그 과거를 기억해 내고 ... " (00:03:29), 1986, <Le Nom de la rose>
7 "바라건대 이 이야기를 준비하는 나의 손 끝이...", 『장미의 이름』, 2006. 04. (p.45)
8 소설 속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하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p. 319의 '제2일-한밤중', 낯선 소녀를 만나 세속적 사랑의 열락에 빠지는 장면은 p.414의 '제3일-종과 이후'에서 드러난다. 한 편 영화 속에서는 서사 진행의 초반 (00:16:53)에서 소녀와의 우연한 만남, (00:45:34)에서는 아드소와 소녀가 정사를 나눈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01:13:00) 무렵 등장해 사건 배열을 달리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수련사인 네 본분을 저버리는 죄", 『장미의 이름』, 2006. 04. (p.467- 469)
10 "사랑이 없다면 삶은 얼마나 평화롭겠느냐." (00:54:43), <Le Nom de la rose>, 1986
11 "속세의 내 유일한 사랑이었던 그녀" (02:07:56), <Le Nom de la rose>, 1986
12 "이제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01:47:09), <Le Nom de la rose>, 1986
13 "하느님, 구해주십시오." (02:00:31), <Le Nom de la rose>,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