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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의 국내 민족 운동
크게 어렵게 나오는 부분이 아직까지는 없음...
사회주의
1921. 이동휘를 중심으로 한 상하이파 고려 공산당
서울청년회 - 화요회 - 북풍회
화요회와 북풍회의 일부 - 조선공산당 - 치안유지법 제정과 조선공산당 사건
자치 운동과 민족 유일당 운동
민족개조론은『개벽(開闢)』1922년 5월호에 발표되었다. 민족개조론은 상·중·하로 구성된 장편 논문이며 글머리에는 변언(辯言), 끝에는 결론이 붙어 있다. 민족개조론 상(上)에서 이광수는 민족개조의 원리, 역사상으로 본 민족개조 운동, 갑신이래의 조선의 개조 운동을, 중(中)에서는 민족 개조는 도덕적일 것, 민족성의 개조는 가능한가, 민족성의 개조는 얼마나한 시간을 요할까, 하(下)에서는 개조의 내용, 개조의 방법을 다루고 있다.
민족개조론의 핵심은 하(下)의 내용을 보면, 첫째, 각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속이는 행실 없애기. 둘째, 공상과 공론은 버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 의무라고 생각하는 바를 부지런히 실행하기. 셋째, 표리부동과 반복함이 없이 의리와 허락을 철석같이 지키는 충성되는 신의 있는 자가 되기. 넷째, 고식, 준수 등의 겁나(怯懦)를 버리기. 다섯째, 개인보다 단체를, 즉 사보다 공을 중히 여겨, 사회에 대한 봉사를 생명으로 알기(이상 덕육(德育)방면). 여섯째, 보통 상식을 가지고 일종 이상의 전문 학술이나 기예를 배워 반드시 일종 이상의 직업을 가지기(이상 지육(智育)방면). 일곱째, 근검 저축을 상(尙)하여 생활의 경제적 독립을 가지기(이상 경제방면)였고, 이 밖에 청결, 운동 등 덕·체·지의 3육(三育)과 부의 축적, 사회 봉사심의 함양 등을 개조의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발표되자마자 민족개조론은 지사적 계층과 청년들의 맹렬한 비난과 분노에 직면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독립을 외면한 개조의 방법론이 갖는 허구성이 청년층의 분노를 유발하였다. 둘째, 개조론이 재외동포 중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은 투쟁론을 주장하던 해외 망명객들을 심하게 모독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셋째, 3·1 운동 참가자를 무지몽매한 야만인이라고 하여 3·1 운동을 비하한 모멸적 발언이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3·1 운동 이후 1920년대 중반에 오면 국내의 민족운동이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크게 양분되며 이를 통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1927년 신간회 조직으로 나타났다. 좌우익 이데올로기가 일종의 대립의식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초입단계에서 하나의 쐐기 같은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민족개조론이었다. 민족개조론에 이어서 2년 후 동아일보에 발표한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은 정치·교육·산업의 3대 결사를 설립한다는 명목하에 직접적으로 자치론으로 방향을 전환한 기폭제가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
춘원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 1922』 『민족적 경륜, 1924』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 대단히 중요한 사료!
실력양성운동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물산장려운동 · 민립대설립운동 실패),
사회주의 세력에서의 비판이 있자...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 자치운동이 대두된 것.
도산 안창호의 민족 개조론, 춘원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
도산의 '회개' vs. 이광수의 '재건'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개조론>의 세밀한 내용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개조'의 개념만 살펴도 답은 쉽게 나온다. 도산과 이광수의 개조는 그 개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도산은 개조라는 말을 '회개(repent)'의 뜻으로 사용한 반면, 이광수는 이를 '재건(reconstruction)'으로 받아들였다.
신간회의 창립 과정을 꼭 알아 두기!
조선민흥회 - 정우회선언 - 신간회
단체가 가입하면 이념에 휘둘릴 수 있어서 신간회에의 단체 가입은 배제하였음.
또한 계급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주장을 하였는데,
8시간 노동제 (근데 100년이 지나도 안 지켜짐???),
일본인의 이주 반대,
소작료 상한제,
최저임금제,
여성 차별 제거,
조선인을 위한 교육 등등...
다만! 의무교육에 관한 내용은, 조소앙의 <건국 강령>에서 처음 나오는 내용이다. 이 부분은 주의!!
이상재와 홍명희 등의 인물, 그리고 신간회의 자발적 해소 등에 대해 알면 좋을 것 같다.
신간회는 공개 단체인 점도!
…… 신간회 구성 분자 다수가 프롤레타리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신간회가 소부르주아지 집단이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만약 그 구성 분자로 집단에 대한 명제를 결정한다면 현재의 일본⋅미국⋅프랑스⋅독일 등은 자본가의 국가가 아니다. ……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미국⋅프랑스⋅독일을 자본가의 국가라고 하는 것은 그 정권이 부르주아지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신간회를 소부르주아지 집단이라고 하는 것은 …… 지도 그룹이 소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대변자인 좌익 민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 지회는 영도권이 소부르주아지에게 있는 신간회는 소부르주아지 집단이므로 해소하고자 한다.
현재의 신간회는 노농 대중의 X쟁 의욕을 말살시키는 조직이 아니냐?
현재 조선의 노동 대중의 XX욕은 성장했다. 보다 고급의 XX욕을 가지고 있다. 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약) 발휘하게 되었다. 그런데 계급적 지도 정신을 가지지 않은 신간회는 ‘보다 고급의 XX욕’을 말살시키고 있다. 최근 각 지회의 해소 결의를 보고 대경실색한 중앙 간부급에서 발송한 문서 중에 ‘신간 운동은 확고한 강령과 기본적인 정신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다시 이러한 비판을 용납할 수 없다……’(1930년 12월 12일 신서발 제67호 중)라고 한 문구가 이를 잘 설명한다. …… 신간회 조직도 대중의 성장력을 억압하고 있다. 노농 대중의 XX욕은 신간회의 조직적 속박을 파괴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지회는 부르짖는다. 계급적 지도 정신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XX의 성장에는 현재의 신간회가 장해물이다. ……
신간회 해소는 시기상조인가?
신간회는 해소될 것이며 또한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가졌다는 것은 세상의 정론이다. 다만 문제는 그 시기일 뿐이다. …… 신간회는 과거 4개년간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다. 노농 대중은 신간회를 의심하게 되었으며 그 의의를 고찰하게 되었다. …… 이제 노농 대중은 신간회의 소위 협동적 조직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업적이 없었음을 능히 깨닫게 될 정도로 의식화되었다. 우리는 신간회를 통해 비로소 신간회 조직의 모순을 알았다. (약) 그뿐만 아니라 매년 증가하는 소작 및 노동 쟁의, 신흥 탄광 사건, 단천 농민 봉기, 미연에 발각된 이원철산(利原鐵山) 등은 이를 설명하는 것 아니냐?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지도 정신과 함께하지 않은 옛 방식의 협동선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협동전선 병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신간회의 해소 과정
학생 운동
6. 10. 만세 운동
6 · 10 만세 운동은 3 · 1 운동과 마찬가지로 거국적 운동을 도모한 것으로,
학생 간의 일을 넘어서 여러 메시지가 담긴 운동 구호가 많이 등장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학생의 날, 11. 3.)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 파견을 한 것은 맞지만, 민중 대회 개최는 실패하였음.
둘 모두 학생의 주도 하에 이뤄진 운동이고, 내용의 취지도 비슷해 사료를 보고 혼동이 올 수 있다.
이 참에 정리해보자.
6. 10. 만세운동 | 광주학생항일운동 |
천도교 청년회가 발각되어 조선 학생 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세력, (조선청년총동맹 등) 서울에서, 순종의 인산일, "학교의 용어는 조선어로" 동양척식주식회사 폐지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라 |
'우리의 슬로건 아래로!' '검거자' '교내에 경찰관 침입' '동맹 휴학' 신간회의 진상조사단 파견 |
3 · 1 운동과 유사한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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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간의 다툼으로부터 비롯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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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과학 연구의 자유'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 |
6. 10. 만세운동은 결국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학생 외에도 다른 계층 모두 함께 참여한 운동이었다.
따라서 학생의 권리에 관한 내용 외에도 '8시간 노동제 실시' '동척 폐지' 등등 노동-농민 운동에 관한 메시지도 있었다.
여성 운동과 그 흐름
1923. 조선 민사령 개정과 호주제 법제화가 그 발단!
1920. 조선여자 교육회
1922. 조선여자 기독교청년회 (YWCA) 출범
1927. 신간회의 자매단체 근우회
이화학당(86, 최초의 여학교)→ 여권통문 - 찬양회/순성여학교(98) → 송죽회(1913)
→ 호주제 법제화 + 20년대 여성운동 (YWCA, 근우회)
→ 50년대, <자유부인> 출간
→ 87, 여권선언
→ 노무현 정부, 호주제 폐지
너무 어려운 문제...
농민 운동과 노동 운동 및 쟁의
20년대의 쟁의 - 생존권에 관한 메시지 ... 30년대의 쟁의 - 항일 구국 운동적 성격
이 중간 과정에서 자작농 등의 농민까지 포함하는 조합의 형태로 발전함.
암태도 소작쟁의 (1923)
경성 고무 노동자 여성 파업 (1923)
라이징 선 석유 회사, 원산 노동자 총파업 (1929)
1930년 7월 21일자 『조선일보』는 다음 내용의 기사를 실어 보도하였다.
"단천삼림조합에서 신탄(장작과 숯) 목재 벌채 단속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불평을 품어오던 하다면 연대(何多面 蓮臺里) 주민들은 조합 출장원 모씨와 일본인 모씨의 폭언에 격분하여 면사무소에 몰려가 항의하였는데, 면 직원들이 자전차를 집어던져 상해를 입히는 등 그 폭행이 너무 심하므로 이에 반항하야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면직원, 순사 등을 난타하는 등 참상이 벌어졌다. 이 때 군중은 만세를 외쳤는데, 주재소에서는 이를 본서에 알려 경찰 20여 명의 응원을 얻어 진압에 노력하던 중 오늘 아침 네 시부터 검속이 시작되어 40명이 체포되었다. 이에 남녀 수백명이 경찰서에 몰려와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면서 해산하지 아니하므로 사태가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단천 산림조합시행령 반대 운동 (1930)
평원 고무 공장 노동자의 을밀대 고공 농성 (1931)
실력 양성 운동
물산장려운동(단, 물산장려기성회는 서울에서 조직됐다는 점 주의!
물산장려운동은 평양에서 시작되었지만, 물산장려운동기성회는 서울에서 조직됨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민족주의 세력의 비판
물산장려운동에 대해서는 민족주의계, 사회주의계 모두에게 비판받음
이 문제는 좀 까다로웠을 것 같다.
우선 ㄱ. 의 신민부 조직은 ... 3부 통합의 발단이 된 미쓰야 협정(25) 이전인 것을 알 수 있고,
ㄷ. 의 경우 29년도이다.
ㄴ. 의 경우 정우회는 신간회의 전신이므로, 결국 ㄴ - ㄷ 임을 알 수 있고,
형평운동에 해당되는 ㄹ의 경우 실력양성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20년대 초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ㄹ - ㄱ - ㄴ- ㄷ 으로 추정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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