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엽적으로 출제될 수 있는 부분, 예상 키워드, 고난도 포인트 등을 정리하는 글입니다.
시대에 따라 우선 정리한 뒤, 문화사 혹은 지역사 등 특정 문제 유형에 따라 부가적으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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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대의 국내 민족 운동
풍기 광복단(채기중, 무장투쟁계) + 조선국권회복단(박상진과 김좌진, 애국계몽계) = 대한 광복회
조선국권회복단은 애국계몽계, 대구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이 선지만 보고도,
국권회복단임을 추리할 수 있다.
송죽회는 평양숭의여학교의 교사 김경희(金敬熙, 敬喜)·황에스터, 졸업생 안정석(安貞錫) 등 3명이 재학생 중 애국심이 투철한 박현숙(朴賢淑)·황신덕(黃信德)·채광덕(蔡光德)·이마대(李馬大)·송복신(宋福信)·이효덕(李孝德)·김옥석(金玉石)·최자혜(崔慈惠)·서매물(徐梅勿)·최의경(崔義卿)·이혜경(李惠卿) 등 20명을 선발해 조직하였다.
회원의 입회는 회원 1명의 추천에 의해 전원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하였다. 월회비는 30전이었고, 그밖에 특별회비제도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이들은 조직을 확장하기 위해 창설자 3명 중 김경희는 학교에서, 황에스터는 서울에서, 안정석은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민족정신의 함양과 정신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매주 1회씩 기숙사에서 기도회 형식의 비밀집회를 통해 토론회와 역사강좌를 가졌다.
1916년 회원들이 졸업하면서 송죽회 활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들은 졸업 후 각 지방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재직학교를 중심으로 송죽회의 활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송죽회는 창립회원으로 구성된 모조직(母組織)으로서의 송형제(松兄弟)계열과 창립회원 20명이 각기 20개의 자조직(子組織)을 구성, 확장하는 죽형제(竹兄弟)계열의 이원조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점조직화했고, 이문회(以文會)·유신회(維新會)·공주회(公主會)·기도동지회(祈禱同志會) 등의 다른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본부를 평양에 두고 1명의 회장이 전조직을 관장하였다. 지방조직책인 송형제는 매월 정기적으로 평양에 모여 회비납부·사업보고·계획수립에 대해 토의하였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요원으로 활약하다가 1920년에 죽은 초대회장 김경희에 대한 임시정부의 추도사에 의하면, 이 회에서 독립운동자금으로 저축한 금액이 600여 원에 달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이 회가 얼마나 착실하게 운영, 발전해갔는가를 알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회원들이 일본·미국 등지로 유학을 가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까지 확산되었다.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여성들이 많이 참여한 것은 송죽회의 조직이 크게 작용한데 기인하다.
또한, 3·1운동 직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애국부인회의 활동 또한 이 조직이 그 기초가 되었다. 이와 같이 송죽회는 불굴의 애국심을 바탕으로 많은 여성지도자를 배출했으며, 회원들의 철두철미한 기밀유지로 일본경찰의 수사망에도 발각되지 않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송죽회(松竹會))]
송죽회는 아직은... 직접 문제로 출제된 적이 없지만, 여성 단체라서 일단 유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음.
10년대의 국외 민족 운동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의 경계를 대략적으로 긋고,
각 독립단체의 위치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직접 문제로 출제될 수 있음.
이렇게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조직 이름도 당연 정확히 알아야!
위 문제의 경우 '이회영, 압록강을 건너' 등을 단서로 서간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답은 ①
④의 독립 의군부, 대한 광복회 등은 국내의 비밀 결사!
서간도 (삼원보) | 이회영 |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서로군정서 신흥강습소 - 신흥무관학교 (1919) 대한독립단 (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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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명동촌, 용정촌) | 대종교계 | 중광단 - 북로군정서군 간민회 - 대한국민회 - 국민회군 (안무) 서전서숙, 명동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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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신한촌, 한흥동) | 이상설 이동휘 |
해조신문(연해주의 조선신문), 대동공보 13도 의군 성명회, 권업회 대한 광복군 정부 (이상설, 이동휘) 전로 한족 중앙총회 대한국민의회 (이상설 死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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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 신규식 박은식 여운형 |
동제사(신규식, 박은식, 조소앙) - 박달학원 신한 혁명당(15) 대동단결선언 (진짜 중요!) 대동보국단 - <진단> 신한 청년당 - 여운형, 김규식 파리 강화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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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를 뉴욕으로 바꾸는 등 지역명 장난이 있으니 주의 |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
공립 협회(05), 스티븐스 저격(08), 국민회(09), 대한인 국민회(1910), 흥사단(1913, 샌프란시스코) 대조선 국민군단 (1914, 하와이) 숭무학교 (1910, 멕시코) 수양 동우회(1926) |
신한혁명당의 <대동단결선언>
대동단결선언은 주권불멸론과 융희황제의 주권포기론을 근거로 국민주권설을 정립함으로써 독립운동의 이념을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정부적 통할체제(政府的統轄體制)를 계획하는 등 1917년까지 다양하던 독립운동의 이론을 결집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이와 같은 ‘선언’의 계획은 당장에는 실현되지 못하였으나 그 문서가 동포 사회에 널리 송달되었으며, 또 『신한민보(新韓民報)』 등 각처의 신문을 통해 계몽되면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의 모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
요즘 국내를 살펴보면 경술국치 이후로 마귀가 제멋대로 사납게 공격하여 국민들한테 작은 힘도 남아 있지 못하고, 반쪽은 일본인이고 반쪽은 한국인 같은 괴물이 날로 늘어나고, 스님도 아니고 일반 사람도 아닌 요사스런 귀신같은 것들이 늘어난다. 어떤 자들은 종교를 핑계로 일본을 따르는 데 앞장서고, 어떤 자들은 정치를 노래하면서 독립보다 자치가 먼저라고 떠든다. 저런 자들이 2천만 호흡기관을 파괴하며, 4천년 역사를 이어 온 큰 핏줄을 끊어 낸다. 한국말을 쓰면 가혹한 벌을 받고, 한국 역사를 가르치면 바로 쫓겨난다. 만일 이대로 계속 가면 몇 년 못가 아비와 아들이 주고받는 글에서도 왜놈 글자만 쓰고, 장례나 결혼식에서도 우리 겨레 옷은 보기 드물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이 문서로 망할 때 눈물을 뿌린 사람들은 대한이 정말 망해 가는 것에 피가 솟구칠 것이다. 융희 황제가 삼보(三寶)를 포기한 경술년(1910) 8월 29일은 곧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날이니, 그 사이 대한의 삼보는 한 순간도 빼앗기거나 쉰 적이 없다. 우리 동지들이 대한국을 완전히 상속한 사람들이다. 저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바로 민권이 발생한 때다.
상하이 지역은 조금 생소하게 나올 수 있으니 늘 주의!
하지만 동제사, 대동보국단, 신한 혁명당, 신한 청년당 모두 중요함~
미주 지역 - 특히 사진결혼과 공식적 이민을 키워드로 제시될 가능성 높음
대조선 국민군단, 흥사단 등이 대표적이 단체.
이동휘에 대해 이렇게 문제가 나오기는 생소한데...
생각보다 이상설과 함께 이동휘도 빈출 대상임!
한국의 사회주의에 대해서 (공산당의 창당과 그 흐름)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교과서에서 그 부분을 주의깊게 읽었다면 ②를 헷갈려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③은 상하이 지역인데, 이동휘가 상하이에서 활동한 내역은 '상하이파 고려 공산당' 창당임.
다행히 문제 자체는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거라서, ① ② ④ 모두 이동휘인 것을 알았다면
공부를 세심하게 했을 경우 ③ 이 답인 것을 찾을 수 있다.(상해 지역 독립운동이 중요한 이유)
이상설은 인물 문제 대상으로 자주 등장!
④ 대한 국민 의회가 조직될 당시에는 이상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음
대한 국민 의회는 이동휘, 이동녕 중심의 조직
3 . 1 운동
엄밀히 보면 사료 그 자체에 '독립'을 언급하지 않아서 <기미독립선언서>임을 바로 알기는 어려울 수 있음
<기미독립선언서>는 암기할 것~... 상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ㅎㅎㅎ - 최남선이 작성했다는 것도!
무오독립선언서
1918년 무오년에 선포되었다 하여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하며, 작성자는 조소앙(趙素昻)이라고 한다. 조소앙은 “1919년 정월, 선언서의 초안을 서두르게 되었다”라고 하였고, 『지산외유일지』에는 “3월 11일에 선언서를 인쇄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무오독립선언서라는 이름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무오독립선언은 무오년인 1918년에 발표된 선언서가 아니었으며, 1919년 3월 1일 이후에 발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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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무력과 재앙의 작란이 여기서 극에 이르므로 하늘이 그들의 더러운 덕을 꺼리시어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실새, 우리들은 하늘에 순종하고 인도에 응하여 대한독립을 선포하는 동시에 그들의 합병하던 죄악을 선포하고 징계하니,
1. 일본의 합방 동기는 그들이 소위 범일본주의를 아시아에서 실행함이니, 이는 동아시아의 적이요,
2. 일본의 합방 수단은 사기강박과 불법무도와 무력폭행을 구비하였으니, 이는 국제법규의 악마이며,
3. 일본의 합병 결과는 군경의 야만적 힘과 경제의 압박으로 종족을 마멸하며, 종교를 억압하고 핍박하며, 교육을 제한하여 세계 문화를 저지하고 장애하였으니 이는 인류의 적이라.
그러므로 하늘의 뜻과 사람의 도리와 정의법리에 비추어 만국의 입증으로 합방 무효를 선포하며, 그들의 죄악을 응징하며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노라.
슬프도다 일본의 무력과 재앙이여! 작게 징계하고 크게 타이름이 너희의 복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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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최린은 최남선(崔南善)을 추천하였다. 최남선은 독립운동가로서 전국에 이미 알려졌고, 서구적 교양과 재래의 학문을 모두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력도 뛰어난 사람이므로, 최린은 “전민족의 의사를 표시할 독립선언서와 같은 중대한 글을 지을 사람은 그 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한 최남선 스스로 “일생을 학자로 마칠 생각이라 독립운동의 표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언서는 작성하겠다.”고 함으로써 선언서의 작성 문제는 일단 그에게로 낙착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3·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
④ 이름이 헷갈릴 수 있는데, 신규식과 김규식의 구분 필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후략)
대한민국 헌법 전문 일부
임시정부도 분명한 정부이며, 건국의 기점이 되는 뿌리!
헌법의 개정과 지도자의 변천도 알아야 함!
1919년 4월 10일 1차 회의에서 조소앙(趙素昻)의 동의에 임시의정원이라는 명칭이 결정되고 정식으로 구성, 개원되었다. 회의를 통해 의장 이동녕(李東寧), 부의장 손정도(孫貞道)를 선출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이라는 정하였다.
그리고 이승만(李承晩)을 국무총리로 하는 국무원(國務院)을 구성하였으며, 임시정부의 기본법인 「임시헌장」을 제정함으로써 임시정부를 탄생시키는 구실을 담당하였다. 1919년 4월「임시의정원법」을 완성시키고 1919년 9월 개정하였다.
의정원은 각 지방인민의 대표위원으로 조직되었고, 의원의 자격은 중등교육을 받은 만 23세 이상의 남녀로 한하였다. 그리고 광복운동자는 조국광복을 유일한 작업으로 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거나 간접적으로라도 광복사업에 정력·물력의 실천 공헌이 있는 자로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한민국임시의정원(大韓民國臨時議政院))]
대단히 지엽적인 문제였는데...
임시정부 수립 이전에, 상하이의 신한 청년당을 중심으로 임시의정원이 먼저 구성되었다.
임시의정원은 일종의 의회 기관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곳에서 초대 헌법 임시 헌장을 제정하였음.
1대 대통령 -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통치 청원 사건
독립운동 노선 갈등
개조파에 속한 안창호, 창조파에 속한 신채호, 유지파에 속한 김구
23. 국민대표회의
25. 이승만 탄핵 (국민대표회의 결렬 이후)
2대 대통령 - 박은식
25. 개헌을 통해 내각 책임제로 변경 (대통령제 X)
국무령 박은식 체제
27. 국무위원 체제
30. 한국독립당 창당 (30년의 지청천의 한국독립당, 35년의 조소앙의 한국독립당과 다름)
35. 한국국민당 창당
40. 한국독립당 재창당
40. 한국광복군 창설
40. 주석제 - 김구
41. 건국강령 - 보통선거, 무상교육, 대기업의 국유화 주장
41. 태평양전쟁 이후 대일 선전 포고
44. 부주석제 신설 - 김구와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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