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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한국사

[공무원 한국사] 열강의 개입과 갑오개혁 || 기출 및 포인트 정리

추후 자세한 해설 추가 예정~!

일본의 만화, <왕도의 개>에서도 비중있게 묘사되는 김옥균. 김옥균은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개인적인 복습용 노트입니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인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지엽적으로 출제될 수 있는 부분, 예상 키워드, 고난도 포인트 등을 정리하는 글입니다.
시대에 따라 우선 정리한 뒤, 문화사 혹은 지역사 등 특정 문제 유형에 따라 부가적으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위정척사파와 개화파

 

이항로 · 기정진의 60년대 위정척사운동 - 『화서아언』 이라는 책도 기억하자.

본집 권1·2는 각 체시(各體詩) 400여 수로 되어 있다. 권3은 사지평소(辭持平疏) 등 소차(疏箚) 11편으로 되어 있다. 「사동부승지겸진소회소 辭同副承旨兼陳所懷疏」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난 뒤에 쓴 상소로서, 주전론(主戰論)과 척사(斥邪)의 방법으로 내수자강(內修自彊)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화서문집(華西文集))]

기본 문제이지만 그만큼 사료가 중요하다. 키워드를 잘 보면 된다. 


60년대의 위정척사 운동은 기정진 - 이항로를 중심으로 '사학(천주교 등)'을 배척하자 라는 슬로건,
70년대의 위정척사 운동은 최익현의 5불가소,
80년대의 위정척사 운동은 너무 유명한 이만손의 만인소. 


만인소에서 언급되는 나라들로 문제를 내는 경우가 많다.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문제니까 주의. 
특히 [ㄹ]의 '본래 우리와는 싫어할 처지가 없는 나라'는 러시아를 말한다.
평소의 외교 관계를 잘 생각해보자.


1882년 10월 어윤중(魚允中)이 서북경략사로 임명되어 어사(御史)로서 파견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경략사(經略使))]


임오군란

 

임오군란의 전개 과정이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왕후는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

*충주가 한국사에서 제시되는 건... 충주 탄금대 전투, 1959년의 충주 비료 공장 외에는 못 본 것 같다.


 

대원군의 복귀와 임시 집권, 신식 군제의 폐지와 청의 납치 


군인만 참여한 게 아니라는 점도 중요! 도시 빈민도 있었다.


<제물포조약>, <조 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여기서 청의 치외법권 등 인정)
임오군란에 대한 사과 문제로 3차 수신사 (박영효) 파견


임오군란 이후 파견된 외국인 고문들! 

묄렌도르프는 이후 '당오전 주조' 를 주장하며 박영효 등 개화파와 갈등을 겪는다.
당오전 주조차관 문제와 대립하며, 갑신정변의 발단이 된다. (with 청 · 프 전쟁)

당오전은 갑오개혁 전까지 유통됐다.


제물포조약 vs. 한성조약 ... 구분이 필요하다.

우선 제물포조약의 경우 '경비병이 주둔한다'가 핵심이다. 따라서 지문은 제물포조약.


갑신정변

공포된 혁신정강의 항목은 상당히 많아 80여 개 조항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현재 정확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김옥균이 『갑신일록(甲申日錄)』에 수록한 다음과 같은 14개 조항이다.

대원군을 가까운 시일 내에 돌려보낼 것, 조공하는 허례를 폐지할 것,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權)을 제정하고, 사람의 능력으로써 관직을 택하게 하지, 관직으로써 사람을 택하지 않을 것.
- 신분제 철폐 주장
③ 전국의 지조법(地租法)을 개혁하여 간사한 관리들을 근절하고 백성들의 곤란을 구하며 겸하여 국가 재정을 유족하게 할 것,
내시부(內侍府)를 폐지하고 그 중에서 재능 있는 자가 있으면 등용할 것.
⑤ 그 동안 국가에 해독을 끼친 탐관오리 중에서 심한 자는 처벌할 것,
⑥ 각 도의 환자제도(還上制度)는 영구히 폐지할 것,
규장각(奎章閣)을 폐지할 것,
⑧ 순사제도(巡査制度)를 시급히 설치하여 도적을 방지할 것.
혜상공국(惠商公局)을 폐지할 것, .. 조 - 일 무역 규칙에 대항하는 상인들의 조직 (83)
⑩ 그 동안 유배(流配), 금고(禁錮)된 사람들을 다시 조사하여 석방할 것,
4영(四營)을 합하여 1영(一營)을 만들고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近衛隊)를 시급히 설치할 것.
⑫ 모든 국가 재정은 호조(戶曹)로 하여금 관할하게 하며, 그 밖의 일체의 재무 관청은 폐지할 것,
⑬ 대신과 참찬은 합문(閤門) 안의 의정소(議政所)에서 매일 회의를 하여 정사를 결정한 뒤에 왕에게 품한 다음, 정령(政令)을 공포해서 정사를 집행할 것,  - 입헌군주제 
⑭ 정부는 육조 외에 무릇 불필요한 관청에 속하는 것은 모두 폐지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토의하여 처리하게 할 것.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갑신혁신정강(甲申革新政綱))]

청 - 프 전쟁으로 문제 낸 거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얼마든지 재활용 가능성 있으니 주의 ㅋㅋㅋ! 
갑신정변의 발단 중 하나이다.


내각의 구성원을 보면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있다. 
이들로부터 갑신정변임을 알아야 함 


수능 볼 때 이 지도가 출제됐던 걸로 기억한다. 과정도 잘 기억하자.

갑신정변의 전개과정! 


①  좀 생소할 것 같은데. 정동구락부 주도로 이뤄진 춘생문 사건이다.  (아관파천과 연관있음)

춘생문 사건은 친일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권을 세우고자 한 것. 물론 실패로 돌아가고. 이 이후로 아관파천! 
춘생문 사건 - 아관파천 

② 도 중요한데,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이다. 


제물포조약과 한성조약의 구분 

<제물포조약> - 경비대 주둔!

1항 : 지금으로부터 20일을 기하여 조선국은 흉도를 체포하고 수괴를 가려내 중벌로 다스릴 것.
2항 : 일본국 관리로 피해를 입은 자는 조선국이 융숭한 예로 장사를 지낼 것.
3항 : 조선국은 5만원을 지불하여 일본국 관리 피해자의 유족 및 부상자에 지급할 것.
4항 : 흉도의 폭거로 인하여 일본국이 받은 손해 그리고 공사(公使)를 호위한 육·해군의 군비 중에서 50만원을 조선이 부담하되, 매년 10만원씩 5년에 걸쳐 완납 청산할 것.
5항 :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을 두며, 비용은 조선이 내고, 일본 공사가 경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 시 철병해도 무방.
6항 : 조선국은 일본에 대관(大官)을 특파(3차 수신사)하고 국서를 보내어 일본국에 사죄할 것.

<한성조약> - 공사관 신축 비용 부담!

1. 조선국은 국서를 일본에 보내 사죄를 표명한다. 
2. 일본국의 살해당한 인민의 유족 및 부상자를 휼급하고 상민(商民)의 화물이 파손된 것을 보전하여 조선국에서 10만원을 지불한다. 
3. 이소바야시(磯林) 대위를 살해한 흉도를 체포하여 엄벌에 처한다. 
4. 일본공관을 신기지로 이축함을 요하는 바, 조선국은 마땅히 기지 방옥(房屋)을 교부하여 공관 및 영사관으로 사용하도록 할 것이며, 그 수축 증건을 위해서 조선국이 다시 2만원을 지불하여 공사비에 충용하도록 한다. 
5. 일본 호위병의 영사(營舍)는 공관 부지에서 택하여 정하고, 임오속약(제물포조약) 제5 관에 의거하여 시행한다.

 


갑신정변 이후의 국제 정세 - 한반도 중립화론

* 중립화론은 갑신정변 이후 말고도, 러-일 전쟁 발발 직전에도 논의하였고,
실제로 중립화 선언을 함.
물론 묵살당했지만...


 

조 - 러 밀약을 추진한 이후, 심기가 거슬린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 점령 !!
청의 중재로 거문도 반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벨기에와 같다 ... - 유길준의 중립화론!


[ㄹ] 이후를 보면 '박영효 건백서'가 나오는데, 박영효 건백서가 무엇이냐면... (1888)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臣) 박영효  (갑신정변 이후임을 알 수 있음) 는 삼가 네 번 절하며 대군주 폐하께 상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의 가문은 세신(世臣)의 후예로서 신(臣)의 대에 이르러 부자 형제가 특별히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신의 부자는 폐하께서 내리신 은혜에 감격했고 이에 어떻게 보답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신의 아비인 고(故) 판서 박원양은 항상 신의 형제에게 “온몸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고 마땅히 목숨을 다하여 충성을 바쳐서 국가를 위한 보답의 길을 찾고 위험이나 어려움을 꾀하지 말아라”라고 훈계했습니다. 그때 신은 나이가 적고 배운 바가 모자라 비록 그 말을 들었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만 얼굴을 들고 응답했을 뿐입니다.

성은(聖恩)의 만분의 일이나마 제 마음으로 삼으려 했지만 일의 순리를 헤아리지 못하고 갑신년(1884)에 이르러 멋대로 경솔한 거사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천운과 마음이 어긋나 공적으로는 폐하의 진노를 사고 삼국의 분란을 일으켰으며, 사적으로는 헛되이 신의 부모 형제와 친구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거사는 끝내 나라에 무익했고 신은 인정도 의리도 없는 무리와 같은 자로 낙인찍혔습니다. 그럼에도 나아와 명을 받고 엎드려 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그 거사가 사실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에서 벌인 것이지 찬탈이나 반란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근세 문명국에서 죄를 따질 때에는 그 사정과 원인을 살피되 모호한 것은 따지지 않으니, 신이 역적으로 처벌되는 것은 부당하며 위로는 성세(聖世)의 덕에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신의 죽음에 오명을 남길 뿐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명을 어기고 나라를 탈출하여 타국에서 체류했고, 조정의 문명이 계속 새로워져서 신을 역신(逆臣)으로 보지 않을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중략)……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이 말을 역적의 말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들이시되 의심하지 마소서. 신이 글을 씀에 있어 마음이 초조하고 혼란스러워 말이 많고 중복되었으며 혹 공경함을 잃기도 했으니, 신은 지극한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개국 497년(1888) 1월 13일


동학 농민 운동

공시 특 생각하면 황토현 - 황룡촌 전투 순서 갖고도 낼 수 있으니... 


진짜 나왔네!!?


+ 2차 동학농민 운동 당시에는 백범 김구도 참여함;;!!! 


+ 이 시기는 순서가 정말 중요! 특히 일본의 경복궁 침입 전후로 나눠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사발통문을 돌린 시기는 '조병갑의 학정' 이후

조병갑의 학정 → 사발통문 → 고부봉기 → 안핵사 이용태 → 제폭구민을 내세운 백산봉기 → 황토현 · 황룡촌 전투



4대 격문을 발표한 시기는 백산봉기!
특히 여기에 '왜적의 무리를 내몰고자 함'이라고 해서, 아 경복궁 침입 이후구나! 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또한 문제 패턴으로 갑신정변 | 동학 운동 | 갑오개혁 묶어서 
각 세력의 주장을 비교하는 문제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동학 운동만의 고유 주장으로는 '토지 분배'에 관한 내용이다.

① 도인(道人)과 정부와의 사이에는 숙혐(宿嫌)을 탕척(蕩滌)하고 서정(庶政)을 협력할 것,
②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査得)해 일일이 엄징할 것,
③ 횡포한 부호배(富豪輩)를 엄징할 것,
④ 불량한 유림(儒林)과 양반배(兩班輩)는 못된 버릇을 징계할 것,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⑥ 칠반천인(七班賤人)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白丁) 머리에 쓰는 평양립(平壤笠)은 벗어 버릴 것,

좌 [ㄴ]의 경우, 동학운동에서는 제기되지 않음! 과부의 재가만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청춘과부(靑春寡婦)의 개가를 허락할 것, *조혼을 금지할 것... 은 갑오개혁, 재가를 허용할 것...은 동학 운동 
무명잡세(無名雜稅)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


관리 채용은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⑩ 왜(倭)와 간통(奸通)하는 자는 엄징할 것,
⑪ 공사채(公私債)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分作)하게 할 것 등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

 

전주 화약 이후 - 농민들의 자치 기구인 집강소 설치


법규 교정소, 교정청 ... 서로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게 내는 것 같다.
법규 교정소는 대한제국의 광무정부에서 설치한 기구이다. 여기서 『대한국 국제』 를 작성한 것.
법규교정소를 소재로 하여 최고난도로 나온 문제도 있으니 주의.


갑오개혁 (을미개혁도 3차 갑오개혁으로 보는 경향 있음)

+ 1차 갑오개혁 시기에는 일본은 전쟁 수행 중이었음. 따라서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했다, 상대적으로...


1차 갑오개혁을 묻는 문제이다.

개국 기년 사용 (1차갑오개혁) → 2차 갑오개혁 과정에서 독립서고문과 홍범 14조
2차갑오개혁 당시 23부 개편 → 아관파천 당시 13도제로 재개편

1차 갑오개혁 당시 의정부 8아문 체제 → 『홍범 14조』  "...탁지아문에서 관할한다" → 내각 7부 개편 (탁지부)

개국기년의 사용, 홍범14조 반포 이후의 정부 조직 개편 등은 빈출 소재!


1차 갑오개혁 - 도찰원 & 경무청 설치, 은 본위제 실시, 도량형 통일, 일본 화폐 사용 (당오전 ㄴㄴ)


1차 갑오개혁의 도량형 개혁과 광무개혁의 평식원을 헷갈리지 말자.

광무개혁 - 평식원 설치 , 금 본위제 시도 (도입은 ㄴㄴ)


2차 갑오개혁 - 재판소를 설치했다
수령으로부터 사법권을 박탈, 이제 사법권은 법부에 속한 재판소를 통해 규율 ... 민법과 형법 마련 (홍범 14조)

제1조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제2조 왕실 전범(王室典範)을 작성하여 대통(大統)의 계승과 종실(宗室)·척신(戚臣)의 구별을 밝힌다.
제3조 국왕(大君主)이 정전에 나아가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비빈·종실 및 척신이 관여함을 용납지 않는다.
제4조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분리하여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 1차 갑오개혁 때의 의정부 - 궁내부 이원화 
제5조 의정부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의 한계를 명백히 규정한다. - 1차 갑오개혁 때의 의정부 8아문 체제 
제6조 부세(賦稅, 세금의 부과)는 모두 법령으로 정하고 명목을 더하여 거두지 못한다.
제7조 조세 부과와 징수 및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관장한다. - 1차 갑오개혁 때의 의정부 8아문 체제 
제8조 왕실은 솔선하여 경비를 절약해서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제9조 왕실과 각 관부(官府)에서 사용하는 경비는 1년간의 예산을 세워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0조 지방관 제도를 속히 개정하여 지방관의 직권을 한정한다.
제11조 널리 자질이 있는 젊은이를 외국에 파견하여 학술과 기예(技藝)를 익히도록 한다.

[ㅁ] 홍범 14조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주의

 

제12조 장교(將校)를 교육하고 징병 제도를 정하여 군제(軍制)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3조 민법 및 형법을 엄정히 정하여 함부로 가두거나 벌하지 말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제14조 사람을 쓰는 데 문벌(門閥)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 1차 갑오개혁 때의 과거제 폐지 

교육입국조서의 반포 역시 2차 갑오개혁의 내용 중 하나이다.

이제 짐이 교육의 강령(綱領)을 보이노니 헛이름을 물리치고 실용을 취할지어다. 곧, 덕을 기를지니, 오륜의 행실을 닦아 속강(俗綱)을 문란하게 하지 말고, 풍교를 세워 인세의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킬지어다. 다음은 몸을 기를지니, 근로와 역행(力行)을 주로 하며, 게으름과 평안함을 탐하지 말고, 괴롭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말며, 너희의 근육을 굳게 하고 뼈를 튼튼히 하여 강장하고 병 없는 낙을 누려받을지어다. 다음은, 지(知)를 기를지니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추궁함으로써 지를 닦고 성(性)을 이룩하고, 아름답고 미운 것과 옳고 그른 것과, 길고 짧은 데서 나와 남의 구역을 세우지 말고, 정밀히 연구하고 널리 통하기를 힘쓸지어다. 그리고 한 몸의 사(私)를 꾀하지 말고, 공중의 이익을 도모할지어다.

...

나라의 분한(憤恨)을 대적할 이 오직 너희들 신민이요, 국가의 모욕을 막을 이 오직 너희들 신민이니, 이것은 다 너희들 신민의 본분이로다. 학식의 등급으로 그 공효(功效)의 고하를 아뢰되, 이러한 일로 상을 좇다가 사소한 결단(缺端)이 있더라도, 너희들 신민은 또한 이것이 너희들의 교육이 밝지 못한 탓이라고 말할지어다. 상하가 마음을 같이 하기를 힘쓸지어다. 너희들 신민의 마음이 곧 짐의 마음이니 힘쓸지어다. 진실로 이와 같을진대 짐은 조종의 덕광(德光)을 사방에 날릴 것이요, 너희들 신민 또한 너희들 선조의 어진 자식과 착한 손자가 될 것이니, 힘쓸지어다.

2차 갑오개혁의 내용을 묻는 것이다.

83년에 설치된 혜상공국84년, 갑신정변 때 폐지 주장 ... →  상리국  2차 갑오개혁 때 폐지

 광무정부, 상무사 설치 (위 [ㄹ]) → 공진회 개편 

공진회 vs. 일진회 


내장원이 그렇게 생소한가...

「신식화폐발행장정」은 일본화폐제도를 본떠서 은화본위제를 채택한 것인데, 특히 제7조의 규정은 일본화폐의 조선 내에서의 유통의 길을 트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1원·20전·10전·5전·2전·1전의 경화(硬貨)가 조선에 유입되었다.또한 장정에는 1892년의 「신식화폐조례」와는 달리 화폐의 불법주조행위에 대한 금지 내지 처벌 규정이 전혀 없어, 이후 많은 사주(私鑄) 행위를 야기시켰다. 한편, 전환국(典圜局)에서는 원료의 결핍으로 본위화폐인 5냥 은화와 1냥 은화는 주조하지 못하고, 백동화·적동화 등 수익성이 큰 보조화폐만을 남주(濫鑄)하여 유통시켰다.특히 백동화는 가장 수익성이 높았으므로, 전환국은 정부의 재정난 타개를 위해서도 백동화를 대량 주조하였다. 그런데 백동화는 전환국에서만 주조된 것이 아니라, 특주(特鑄)·묵주(默鑄)·사주 등 비공식 내지 불법으로 주조되고, 심지어는 다량의 백동화가 일본 등 외국에서 사주되어 밀수입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백동화 인플레이션’이라는 결과가 초래되었다.백동화는 경기도를 중심한 중부지역에서만 주로 유통되고, 남부·북부지역에서는 거의 유통되지 못하였다. 백동화의 가치는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였고, 백동화의 대량 유통은 그 대신 물가 앙등만을 가져왔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신식화폐발행장정(新式貨幣發行章程))]

④ 1차 갑오개혁 중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한다' '은본위제를 채택한다'가 있는데, 이를 규정한 것이 바로
신식 화폐 발행 장정!
신식 화폐 발행 장정이라는 이름이 낯설어서 고난도를 만든 것 같다.


도량형을 소재로 문제를 이렇게 낼 줄은 몰랐는데...

① 고려의 시장 감독 기구였던 경시서를 계승한 것이 세조 대의 평시서! 
평시서에서는 시장 감독은 물론 도량형도 관장했다.
② 1차 갑오 개혁 당시 도량형을 통일했다.
③ 광무 정부에서는 평식원 설치
④ 경남 진주의 이학찬이, 백정 처우를 개선코자 조직한 것이 형평사!